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
박경리 문학관 주최로
‘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
전국시낭송대회’가 열렸습니다.
60여 명이 참가한
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
바로 이생진 시인의
이 작품입니다
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
남성 낭송가의 떨리고
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
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.
좋은 낭송은
시 속의 ‘나’와
낭송하는 ‘나’와
그것을 듣고있는 ‘나’를
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.
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
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
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.
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
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
창문 앞에
우두커니 서 있고,
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
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
그 앞에 우두커니
서 있는 장면은
상상만 해도
앞이 막막하고
울컥하지 않습니까?
시인은 차분하게
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.
우리의 삶이란
“서로 모르는 사이가/
서로 알아가며 살다가/
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”
일 뿐이라고.
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
우리를 나무라지요.
거창하게
인생이니,
철학이니,
종교니 하며
마치 삶의 본질이
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
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
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.
진리는
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
“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.”.
그러므로
‘아내와 나 사이’의 거리는
우리의 어리석음을
가시적으로 보여주는
바로미터인 셈이지요.
오늘도
당신은 좋은 일만 있을겁니다.
( 김남호 / 문학평론가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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